[기고] 이태원 참사로 우리를 돌아본다

박인성 한국산삼유통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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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넷
기사입력 2022-11-10 [10:21]

▲ 박인성 한국산삼유통 고문     ©

언제부터인 지 낯선 외래 분장을 하고 파티를 즐기는 미국 `핼러윈 축제`가 한국 젊은이들의 집단문화로 자리잡았다.  그 중심지는 주둔미군을 시작으로 미국 대중문화의 온실이었던 용산구 이태원 일대다.

 

하지만 올해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몰리는 인파에 대한 안전사고 예방 조치가 전혀 없었다. 이태원 상점과 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인원에 대한 사전분석은 이뤄지지 않았고, 경찰의 통행로 확보 조치와 안전요원 배치도 없었다.

 

특히 사고 하루 전인 28일에도 이 골목에 인파가 몰리면서 유사한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할 뻔했는데도, 누구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 우리 모두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대참사인 셈이다. 안이한 수습태도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소관부서 장관과 현장관리와 인력통제에 실패한 경찰청장의 문책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이번 사고를 보면서 사회의 하드웨어는 선진국이더라도 소프트웨어는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시민 안전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선진 사회는 정부와 공권력의 힘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소중한 젊은이들을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보낸 데 대해 사회 전체의 처절한 반성과 함께 시민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도로 운전 시 구급차와 소방차 출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 태도, 안전 요원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무질서 의식 등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대형 참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정부 당국의 책임자 처벌을 당연히 요구하는 한편 우리들 스스로 시민의식을 되돌라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어른들의 이기적 태도와 무질서 의식은 자라나는 10대들에게도 나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방과후 학교를 나온 학생들이 교복아래 신발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요즘 청소년의 교통수단이 되고 있는 킥보도에 두명이 올라타 곡예운전을 하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아찔하다. 어릴적부터 안전불감증이 몸에 배면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군중밀집 현장에서 위험 감지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일단 위험을 자각하면 그곳을 벗어나려는 자연발생적 방어기제가 몸에 배어야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를 해선 안된다. 일부 야권 인사들은 SNS를 활용해 이번 사고를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고만 터지면 조작과 선동을 통해 국정 문란, 정부 무능으로 몰아가 정치적 이권을 챙기려는 세력에 대해  말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청소년 156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국가적인 비극을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건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집회 대신 합동분향소 참배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조용히 애도하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일거에 몰리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는데, 또 집회를 열어 사람을 끌어모으는 건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민들은 이런 집회에 동의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정부 당국의 미흡한 대처나 당국자들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에서 절차와 법에 따라 진상을 조사할 것이다. 장차관급 공직자에 대한 문책성 경질과 소관 부서, 부서장에 대한 사법적 처벌은 별개로 이뤄질 것이다. 이같은 공적 프로세스를 무시한 어떠한 정치적 경거망동은 오히려 국민적 공분이라는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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