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가짜 타동사 '한자어+시키다'는 언어폭력이다"…'누가 말끝마다 권력을 입에 담는가'

저자, 충청리뷰 편집국장 지낸 임철의씨 "언어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의식 구조와 말 영영 못 고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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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넷
기사입력 2021-03-01 [16:50]

 

‘국회는 새말법(新語法)을 통과시켰다.’

‘그는 뛰어난 무대 공연으로 관중을 감동시켰다.’

‘그는 평생에 걸친 헌신으로 세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한식을 미국에서 유행시켰다.’

‘아이를 잘못 교육시킨 부모의 책임입니다.’ ....

 

저자는 이 문장들이 “한자어+시키다를 잘못 쓴 전형적인 비문(非文)”이라고 말한다.

 

“가짜 타동사인 ‘한자어+시키다’의 폐해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어서, 동작을 받는 목적어의 피동적 처지나 상황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구조와 언어인식을 고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가치도착이고 변태다. 문리를 짓밟고 올라선 말이 정신을 병들게 하고, 병든 정신이 말을 병들게 하는 악순환을 부추긴다.”

 

충청리뷰 편집국장을 지낸 임철의 저자는 “언어 갑질, 언폭(言暴)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심성을 황량하고 병들게 만든다. 의식, 무의식 속에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의 DNA를 무한정 복제하는 언어는 폭력배 수 천 수 만 명을 잡아들인다고 해결할 수 없는 보다 크고 깊은 근본적인 문제를 낳는다"며 '한자어+시키다' 스스로 폭력배가 되어버린 언어를 바로 잡는 일은 대증요법이 아니라 뿌리 자체를 뽑아내는 근본 대책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책에서 기형의 낱말 ‘당부 드리다’가 뿜는 권력의 속셈을, 가짜 타동사 ‘한자어+시키다’가 짧은 시간에 우리말에 침투해 들어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뿌리 깊은 병증을 일으키는 현상과 원인을 다양하고 깊게 짚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요즘 방송이나 신문, 학술 문예지 등이 숱하게 생산하는 토론과 비평, 보도문, 칼럼과 사설, 논문, 수필, 번역문 등을 보노라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지경이다. 정치인, 관료, 의사, 교수와 교사, 기자, 문인, 학인이라는 사람들의 말과 글일수록 눈과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처참하게 오염됐다는 것이다. 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무 상황, 아무 낱말에나 ‘한자어+시키다’를 주동의 타동사로 활용해 문자를 완성한다.

 

아마도 먹물들은 S-O-V(주어 +목적+ 동사)의 순서로 우리말을 하면서 정작 머릿속으로는 S-V-O(주어 + 동사 +목적어)의 영어 문장을 떠올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또는 저자는 “말의 순서, 즉 단어들의 위치가 어우러져 만드는 통사구조가 영어와 우리말 사이에 한 끗 정도의 차이만 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사달을 일으킨다”며 “쓰임새가 거의 없어야 마땅한 사동사인 ‘한자어+시키다’를 범주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넓은 일반 타동사의 원형쯤으로 착각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무지이자 언어폭력이다.”고 규정한다.

 

‘한자어+시키다’는 인형극에서 인형의 움직임을 줄을 이용해 조종하듯 남을 부리는 걸 본령으로 하는 비뚤어진 권력의지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자어+시키다는 문리를 넘어 우리의 사고를 짓밟는 고약한 특수 형태의 사동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근본 없는 말이 횡행하는 데도 방관하거나 오히려 앞장 서 조장하는 국어사전들을 함께 탄핵한다.

 

“ ‘시키다’, ‘당부 드리다’ 같은 말은 우리말을 파괴하는 독버섯 같은 존재다. 우리말을 흉악하게 만들고 이 말을 부리는 주인인 우리의 사고를 세뇌하고 조종한다. 그래서 예의를 모르는 무례하며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인간을 복제한다. 갑질의 언어로 무장한 입들이 말문을 열 때마다 독소를 뿜어낸다. 가짜 타동사인 ‘한자어+시키다’를 언어 심판정에 내세운 이유는 문리를 짓밟고 말끝마다 고약한 권력을 내뿜는 언어, 그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병들어가는 우리의 의식구조와 말을 영영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가짜 타동사 ‘한자어+시키다’를 제거할 방안으로 ‘한자어+하다=타동사’, ‘한자어+되다=자동사’ 공식을 내놓는다. 영어도 놀랄 만큼 융통성과 확장성이 풍부한 한자의 말뜻을 살리면 된다는 것이다. 발상이 단순해 파격적이다.

 

“국회는 새말법(新語法)을 통과하라!”

“그는 뛰어난 무대 공연으로 관중을 감동했다.”

“그는 평생에 걸친 헌신으로 세상을 발전했다.”

“그는 한식을 미국에서 유행했다.”

“아이를 잘못 교육한 부모의 책임입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위와 같은 신어(New Speak)를 성립하는 ‘새 말법’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병들었던 우리말을 구김 없이 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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